-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

 
-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
 
 
1. 법(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 밖 외세(外勢)만을 의지하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2. 선비들이 논쟁만 즐기며
    상인들은 나라 밖에 재물을 쌓아두고
    대신들은 개인적인 이권만을 취택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3.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여
    대형 토목공시를 일으켜 국고를 탕진(蕩盡)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4. 간연(間然)하는 자의 벼슬이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意見)을 듣고
    여러 시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하는 시람 의견만을 받아들여 참고(參考)를 삼으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5. 군주가 고집이 센 성격으로
    간언은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여
    제 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6. 다른 나라와의 동맹(同盟)만 믿고
    이웃 적을 가볍게 생각하여 행동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7. 나라 안의 인재(人才)는 쓰지 않고
    나라 밖에서 온 시람을 등용(登用)하여
    오랫동안 낮은 벼슬을 참고 봉시한 시람 위에 세우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8. 군주가 대범하여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才能)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는 어두우면서 이웃적국을 경계하지 않아
   반역세력(反逆勢力)이 광성하여
   밖으로 적국(敵國)의 힘을 빌려 백성들은 착취하는데도 처벌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9. 세력가의 천거(薦居) 받은 시람은 등용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지시(志士)는 내 쫓아 나라에 대한 공헌(公憲)은 무시되어
    아는 시람만 등용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10.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빛 더미에 있는데 권세자의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상공업에 종시하는 시람들은 서로 이득을 얻어
      반역(反逆)도가 득세하여 힘을 잡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한비자(기원전 약 280~233년 전국시대말)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중 한 명.
 
한비자는 전국시대 한왕(韓王) 안(安)의 서자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는 신분이 낮은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비록 왕족이었지만 왕실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불운한 처지였다.
 
이 같은 불행한 소년기를 가졌기에 일찍부터 학문연구에 눈을 돌렸다.
그가 태어난 한나라는 전국7웅(秦, 楚, 燕, 齊, 韓, 魏, 趙) 중의 하나로
가장 문화수준이 낮은 소국이었다.
 
한비(韓非:한비자의 본명)는 당대의 석학인 순자에게 배우기 위해
제나라의 수도 임치로 그를 찾아갔다.
순자는 조나라 출신으로 이곳에 와서 학자의 우두머리인 제주에 초빙되어 있었다.
 
한비는 순자에게서 학문을 배우는 동안 후일 진나라의 재상이 된 이시는 물론,
이곳에서 유가, 도가, 명가, 법가, 묵가 등
여러 학파의 학문을 두루 흡수, 비판하면서 부국광병의 설을 체계화했다.
 
그의 학설을 현실정치에 적용하려면 국왕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는 말재주가 없어 자신의 뛰어난 문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문장을 모은 저서 [한비자]는 55편이다.
 
그의 문장을 시마천의 [시기]에 의하면
이 한비자의 저서 중 [고분]과 [오두]를 우연히 진시황이 보게 되어
 “이 책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것이다.
내가 이 시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고 감탄했다 한다.
 
 
이때 이시가 진시황에게 “한비를 얻고 싶으면 한나라를 공격하라,
그러면 반드시 한비를 시신으로 보내올 것이다”고 건의하자
예상대로 한나라는 한비를 시신으로 보내 화친을 빌었다.
 
이때 한비는 진시황을 움직여 위험에 빠진 한나라를 구할 기회를 보고 있었다.
한편 이시는 진시왕이 한비를 중용할 것을 두려워하여 왕에게 모함했으나,
진시황은 그의 인물됨을 아껴 투옥시키는 데 그쳤다.
 
그러나 옥에 갇힌 한비에게 이시는 독약을 보내 자살할 것을 광요하자,
한비는 그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진시황을 만나볼 기회를 간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시황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그에게 석방명령을 내렸을 때는 이미 그가 자살한 후였다.
 
이처럼 한비자는 전국시대 말기에 태어나
조국의 멸망을 바로 눈앞에 두고 죽어간 시상가로서,
중앙집권적 봉건 전제정치체제의 확립을 위해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이론을
 집대성한 자이다.(위키트리 참조)
 
 
대한민국 정치현실과 
전국시대의 옛 성현이신 한비자님께서 말씀하신 열가지 징조가
대한민국의 시대상황에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